얼마 전 기도원에 갔을 때 일이다. ㅁ 권사님이 갑자기 털푸덕 주저앉는다. 내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교회에선 한 달에 한 번 기도원엘 간다. 그날은 기도원행 버스 안에서 생에 처음 멀미를 했다. 도착하자마자 다른 이들은 성전으로 들어갔으나 난 울렁거리는 속을 다스리느라 홀로 덩그러니 마당에 앉아있었다. 참 묘한 기분이었다. 함께 있지만 그래서 “우리” 같지만 결국 나 혼자라는 생각. 그 쓸쓸함 말이다. 그날 난 기도원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고 남편을 불러 집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그 기억이 불현듯 났다.
ㅁ 권사님을 옆에서 돌봐드렸다. 집 근처 병원까지 모셔다드리고 당신 딸에게 인계했다. 혼자 생활하시는데 혹여나 못 챙겨 드실까 봐 죽이랑 간식을 사다 드렸다. 그 며칠 후 함께 걷자고 집 밖으로 모시고 나와 식사를 했다. 그게 고맙다고 굳이 점심 약속을 잡으셨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나 말고 다른 이를 함께 초대했단다. 난 요새 불편한 식사는 반드시 체로 연결된다. 그 체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두통과 쓰린 위통으로 나를 괴롭힌다. 그이와의 식사는 불편한 자리임이 틀림없다. 식사를 거절하고 그 자리를 나왔다. 젊은 나라면 그 시간을 참았을 것이다. 참고 식사하고 커피까지 대접했을 것이다. 그런데 육십을 넘긴 나는 참기 싫다 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 이제 그만하라 한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과연 내 행동이 잘한 결정인지 아닌지 곰곰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했다고 스스로를 토닥였다.
내가 코로나로, 교회 내부의 시끄러움으로, 시골 생활을 핑계로, 교회에 듬성듬성 출석하는 사이, 그분은 부지런히 나가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나를 바라보는 푸르스름한 시선만으로도 알겠다. 느낌만으로 자초지종을 따져 물을 수 없으니 답답했고 나를 스스로 해명해야 하는 상황이니 억울했다.
‘내가 마치 대단한 사람인 척 부풀리고 살아야 했나? 영향력 있는 사람인 척 과시해야 했나? 그랬다면 적어도 나를 이렇게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려나?’
아마도 나를 우습게 만들어도 된다고 여지를 주었을 것이다. 아마도 내게 무례해도 된다고 묵시적 동의를 했을 것이다. 불편한 부분 아픈 부분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바로 표현하고 알게 했어야 했다.
그녀와는 30년도 넘은 인연이다. 내 신앙과 함께 시작하여 생의 중요한 대부분 시절을 함께했다. 금융위기 때 그녀의 남편이 실직하여 생활이 어려운 몇 해 동안은 나도 넉넉지 않은 살림에, 쌀이며 생필품을 날랐다. 구역 식구들과 분쟁을 일으켜 그들이 하나둘 교회를 떠날 때도 난 묵묵히 그녀 옆을 지켰다. 교회 사람들과 크고 작은 언쟁이 있을 때에도, 난 그녀 옆에 있었다.
그땐 껴안고 보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껴안을수록 내가 아팠다. 내 가슴은 아픔으로 차고 올라 시렸다. 내 집안 식구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으로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견뎠다.
요즘 나는 성년이 된 아들딸에게 말한다. 서른이 넘었으면 이제 그만 독립할 때라고. 생각과 철학이 뚜렷하니 자립의 순간이라고. 이제 둥지를 떠나 자신의 삶을 향해 훨훨 날아가라고.
자식과의 인연도 그럴진대, 그녀와의 인연도 이젠 보내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가르침은 늘 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했고 타산지석이 되었다. 내가 여물어 관계의 돌계단을 하나 올랐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향수가 있다. 그 향은 과하지 않고 은은하여 어느 순간 내가 된다. 처음의 화려한 향은 어느새 사라지고 잔향이 남아 나의 체취인지 향수의 향인지 도통 모르게 버무려져 나와 함께 남아있는 것이다.
인연의 아픔은 그렇게 날려 보내고 남겨진 느낌은 내 다음 인연에 잔향으로 남으면 좋겠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눅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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