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 추천 응모작>
그릇 이야기
이현수
“쨍그랑”
설거지하다가 내가 아끼는 찻잔을 깼다. 커피를 담으면 어쩐지 맛이 더 좋게 느껴졌고, 심지어 맹맹한 물맛까지 업그레이드시켜주는 마법의 잔이었다. 찻잔을 앞에 두고 사진을 찍으면 그 고급스러움이 주인을 귀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곤 했다. 나는 행여나 금색 도금이 벗겨질까 식기 세척기에도 맡기지 못했는데, 손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자유로이 날아갔다. 그 쨍그랑 소리와 동시에 또 몇십만 원이 날아갔다. 커플 잔 인지라 남은 한 개는 짝꿍이 없어 찬장에 처박아 두게 생겼으니, 무용지물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몇 해 전 이 집으로 이사 오는 날이었다. 친정엄마가 나의 부엌살림을 풀어 제 자리를 찾아 주다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결혼 할 때 해준 살림이 어째 아직 그대로 있니?”
“아직 한참은 더 써도 될껀데...”
나는 아버지가 고장이 난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분해해서 고치고, 닳아진 배터리를 새 걸로 바꿔 라디오에 고무줄로 칭칭 묶어 수십 년씩 듣는 걸 보면서 자라왔다. 내가 입은 옷은 두 해쯤 지나면 자연스레 동생들에게 물려주었다. 구멍 난 스타킹을 꿰매 신고 다니는 담임 선생님을 보면서 절약이 미덕이라 배웠다. 그런 시대를 살았기에 망가져 쓸모없어지기 전에는 절대로 버리는 일이 없었다. 그러면 안 되는 일인 줄 알았다.
엄마는 백화점에 널려있는 예쁜 부엌살림이 얼마나 많은데, 십수 년도 훨씬 지난 구닥다리 살림을 아직 끼고 사느냐고 핀잔을 했다.
결혼 즈음에 남편은 회사의 직장조합주택을 통해 집을 분양받았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는 거’라며 집을 덜컥 사버렸다. 분양대금의 대부분을 은행 융자로 구입했다. 자신이 결정한 일이면서도 ‘신혼을 월세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데......’라며 순전히 나 때문에 집을 산 것처럼 불평을 늘어놓았다.
나는 신혼생활을 빚에 저당잡혀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직장 다니며 모아놓은 결혼자금을 융자금 갚으라고 뚝 떼어 남편에게 주었다. 딱 필요한 살림만 집에서 가져왔다.
그러느라 신혼살림을 장만하고, 예쁜 그릇을 쇼핑하는 호사를 누릴 수 없었다. 집들이 때는 옆집 신혼부부의 그릇과 상을 빌려다 썼다. 옆집 새댁이 신혼살림을 그렇게 빈약하게 해왔느냐는 투로 핀잔을 주어도 부끄럽지 않았다. 융자를 갚느라 절절매는 것보다 살림 규모를 줄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은행 융자는 끝도 없었다. 융자가 없어지면 집을 넓히느라 더 많은 융자를 얻고, 갚고 나면 더 비싼 집을 분양받고, 이런 식이었다. 월급쟁이 월급으로는 집값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제구조인 걸, 평생 공연히 발버둥치며 애만 썼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내 마지막이라 생각되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동네 마실방 아줌마들을 초대했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이 집에 다른 건 다 완벽한데 딱 한 가지가 부족하네. 명품 그릇 좀 사.”
명품 핸드백은 들어봤어도 그릇에도 명품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 당시 우리 집에는 모든 그릇이 코렐이었다. 잘 깨지지 않는 그릇이라 해서 몇 개월 할부로 풀 세트를 구입했다. 나는 그 그릇 세트를 장만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는데, 명품 그릇 한마디에 내 행복이 갑자기 초라해졌다.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명품 그릇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마음은 늘 검소했으나 그릇만큼은 관대했다. 과소비라며 자책하다가도 가족이 함께 쓰는 거라며 면죄부를 주었다. 신혼 때 못 누린 것에 대한 보상이라며 합리화했다. 외국 여행 때도 그 나라를 추억할 커다란 접시들을 사다 날랐다. 이상하게도 나의 그릇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었다.
남편이 제천으로 발령을 받아서 같이 내려갔다. 나는 모처럼 쉬는 시간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했다. 유유자적 혼자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러 다니며 자유와 휴식을 누렸다. 집에 있는 시간에는 그 당시 막 배운 인터넷 쇼핑을 했다. 쇼핑 아이템은 영락없이 그릇이었다. 2년 후 서울 우리 집으로 다시 이사를 왔을 땐, 들어갈 곳을 찾지 못한 그릇이 노란 이사 바구니로 세 바구니나 되었다. 제천에서 2년간 사들인 그릇이 딱 그만큼이라고 바구니가 말해주었다.
나는 아마도 제천에서 마음의 병에 걸렸던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인지하지 못했던 우울을 그릇 쇼핑으로 달랜 것이라며 나를 위로했다. 외로웠긴 했다. 좁은 동네에서 사람들과의 만남을 최대한 절제했던 생활이었다. 마실방 아줌마들도 못 만나고, 친구들도 못 만나니, 사람이 주는 행복을 그릇에 의지했다. 아무래도 그릇이 사람을 대신할 순 없었던 모양이다. 제천의 울타리가 다른 한 편으론 나를 옥죄었나 보다.
요즘은 손님도 집으로 초대하지 않고 집들이조차 밖에서 하는 시대이니, 그 많은 그릇을 꺼내 자랑할 기회도 없다. 차곡차곡 쌓여있는 비싼 그릇을 식구들이라도 누려야 한다고 꺼내 놓으면, 이렇게 며칠에 한 개씩 깨는 불상사가 생기니 참 명품 그릇 유감이다.
쌓여있는 그릇을 볼 때마다 인간의 욕망이 보인다. 물욕을 향한 나의 몸부림과 애씀이 보인다. 욕심이 남겨놓은 증거물 같아 외면하고만 싶다. 이제는 그릇의 무게로 나를 짓누른다. 명품 그릇이 애물단지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불필요한 물건은 모두 다 사치요 허영일 뿐이다’라는 소로우의 말이 귀에서 춤춘다.
다 부질없는 욕망이었음을, 불필요한 것은 거추장스런 전리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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