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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시간 마추픽추/여행문화 22봄

여작반

by 별난 이 2022. 4. 15.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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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시간 마추픽추

 

이현수

 

마침내 해발 3000미터가 넘는 고도의 도시, 페루의 쿠스코에 도착했다. 쿠스코는 잉카 제국의 수도였다. 잉카문명으로의 여행은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에서 시작한다.

12C 경 쿠스코 근처에 자리 잡은 잉카 제국은 안데스 지역의 100개가 넘는 부족 국가들을 정복하여 라틴아메리카의 거대한 왕국을 이루었다. 그들은 하나의 도시를 중심으로, 정복한 나라들을 연결하는 거대한 교통망을 건설했다. 남북을 관통하는 5229 킬로에 달하는 안데스산맥 위의 도로이다.

도로, 다리, 통신이 잉카를 유지하는 세 가지 힘이었는데 그중 도로는 거대 잉카 제국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도로에는 일정 간격으로 탐보라는 간이 역이 있어, 연락병인 차스키가 이동하고 쉴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 도로는 후에 스페인의 침략시 오히려 빠른 시간안에 정복당하는 루트가 되었다.

 

 

 

 

 

 

 

 

 

 

 

우리는 쿠스코에서 2박, 우르밤바 울란타이 탐보에서 1박을 하고 해뜨기 전 깜깜한 새벽에 기차역을 향해 출발했다. 2시간여 잉카레일을 타고 도착한 곳은 아구아스깔리엔떼역. 마추픽추 아래 마을이다. 거기에서 다시 마추픽추 입구까지 올라가는 버스를 타기 위한 기다란 줄에 합류했다. 버스를 타고 아찔한 지그재그 길을 30여분 올라간다. 차창 밖으로 배낭을 메고 걸어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경사가 매우 가파르니 트래킹은 오름 보다는 내림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입구에서 여권을 제시하고 올라가 마주한 건 모든 걸 감싸 안고 시침 뚝 떼고 있는 하얀 운무였다. 운무는 그 많은 관광객들을 집어삼키고 맞은편 와이나픽추의 꼭지마저 돌돌 감싸 안고 묵직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디 해볼 테면 해 봐하고. 일 년 365일 중 360일이 안개 속이라던 말이 눈앞의 현실이 되었다.

 

 

 

해발 2430 미터의 산 꼭데기에서 구름과 안개에 둘러싸여 나 홀로 뚝 떨어져 있는 것 같은 고립감이 들었다. 이런 고도에 이런 구름 장막은 당연하다며, 구름 스스로 마음 바꿔 걷어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강제 기다림의 시간은 스르륵 추억소환으로 마음에 쉬는 공간을 제공했다.

아주 어렸을 적 아직 밝혀진 게 많지 않은 미스테리한 문명이라는 한 문장에 매료되어 잡지에서 본 사진 한 장을 가슴에 담고 언젠가 한 번은 꼭 가 보리라 다짐했다. 그곳이 마추픽추이다. 그러나 남미지역은 비행기로도 먼 곳이다.

출국 전부터 준비가 많았다. ‘삼보 이상은 자동차로인 내가 동네 한 바퀴걷기운동도 하고, 장티푸스, 파상풍, 뇌염등 각종 예방주사를 맞고, 고산병에 유효하다는 비아그라도 처방받았다. 오랜 시간 동안의 꿈이었기에 긴장과 기대가 컸다.

오늘까지 50년 세월과 13시간의 비행 그리고 고산지대에 적응하기 위해 멕시코와 쿠스코에서 보낸 5일을 생각하면, 이 기다림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순간이며, 역사적 대면의 기다림인지. 나는 마치 이 순간의 한 컷을 위해 그동안 여행을 다녔고, 사진을 찍어왔던 것만 같다.

 

너를 만나기 위해 아주 멀리 돌고 돌아온 듯해기다림 끝에 고백한 그 순간, 바람이 운무를 조금씩 아주 천천히 옮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바람과 구름이 밀당을 한다. 바람이 이기면 산모퉁이가 살짝 보이고 얼른 찰칵, 기다렸다가 바람이 이기는 순간 또 찰칵, 바람을 응원하는 수십 번의 기다림과 찰칵이 숨 막히게 반복되었다. 마추픽추의 반쪽짜리 얼굴만 찍을 것 같은 불안감에 숨이 멎을 것 같더니, 마침내 마추픽추 그녀가 얼굴을 내밀었다. 빼꼼히. 부끄러운 듯.

나는 그 웅장함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말을 잊었다. 너를 만나기까지 50513시간의 기다림은 마땅한 일이었고, 너를 마주하고 대치한 두 시간의 기다림 또한 마땅한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마추픽추는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신전지역과 일반 주거 지역이 함께 있다. 신전지역에는 태양 신전, 콘도르 신전, 물의 신전 등이 있고, 주거 지역에는 우물, 귀족과 시민의 집터가 있다. 산의 60도의 경사면에는 촘촘히 만든 계단식 경작지, 그리고 계단식 경작지 끝에는 망루와 수확한 곡물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다. 이 모든 걸 가능케 했던 것은 물이었을 텐데, 그들은 산꼭데기 빙하 지역에서 내려오는 물을 수로를 통해 공급했다. 이렇게 거대하게, 이렇게 완벽하게, 자급자족이 가능한 공중의 도시라니.

1532년 스페인의 원정대에 쫓긴 마지막 남은 잉카인들은 이곳 마추픽추로 피했다. 이곳에서 피해 살던 잉카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수많은 시체를 남기고 순간 이동을 한 것처럼 이 공중도시를 떠났다.

이 거대 도시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잉카인들이 언제, 어떻게, 왜 이곳을 떠났는지 알려진 게 없다. 잉카의 문명은 문자가 아닌 구전으로 전해져 오는 것을 스페인에 의해 기록된 것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미스테리의 고대 도시로 남아있는 이유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려오는 길에 마추픽추 그녀에게 속삭였다.

꼭 한번 더 너를 보고싶어. 지금부터 기다림의 시간은 너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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