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기를 쐬러 나가보니, 문 앞에 검정 봉지가 놓여 있다.
누군가 새벽에 놓고 간 모양이다.
허얼~ 우렁각시가 다녀간 게 분명하다.
새벽에 따서 바로 가져왔는지
이파리가 싱싱한게 청청하기만 하다.
오늘은 이 데크에 오일스텐을 입힐예정이다.
해마다 해 주라 했는데, 벌써 1년이 훌쩍 지났다.
남편 친구는 부인의 기관지가 약하여 전국의 국유림으로 치유 여행을 자주 다닌다고 했다.
좋은 공기 속에선 숨쉬기가 쉬워진단다.
그 얘길 듣고 남편이 이 집을 선뜻 제공했었다.
난 내 지인들을 그렇게나 불러댔는데,
그래서 이곳에 안 와 본 사람은, 내 지인이라 할 수 없다 할 정도였는데,
남편은 이런 일이 처음이었다.
그분 가족이 한 1주일쯤 지내다 갔는데,
어느 날, 감사의 표현으로 데크를 만들어 주겠다는 제안을 했고,
남편과 단 둘이서 거의 열흘동안 이 데크를 손수 만들었다.
남편은 못질은커녕, 치수를 재는 것도, 무거운 물건 하나 제대로 들고 나르는 것도 못하는...
그야말로 숫자 외에는 모든 게 젬병이니, 아마도 그분 혼자 모든 걸 다 했을 것이다.
식사 담당도 그분이 했단다.ㅋㅋ
난 22년 동안 그렇게 많은 지인들을 초대하고, 바베큐를 대접했구만,
이런 도움은 처음이라...
아마도 도움을 준 방향과, 도움을 받는 방향은 양방향이 아니지 싶다.
내가 갚을 길이 없으니 , 그분은 다른 방향으로부터 반드시 축복을 받지 싶었다.
그 소식은 얼마 전 들을 수 있었다.
기침과 함께 기관지에서 이물질이 튀어나와 수십 년간 괴롭혔던 부인의 건강이 극적으로 회복되었다고 말이다.
이 난간은... 초짜들이 만들기엔 지략과 품이 제법 많이 드는 과제였을 것이다.
이 난간으로 데크의 안전과 품위는 올라갔으나,
그러나... 오일스텐을 칠하는 일에도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이 소모되었다.
없어도 되련만...
우쨌든 난간부터 시이작.
이렇게 다 칠하는데 꼬박 3시간이 걸렸다.
오일스텐도 2.5통 쓰고,
오일스텐 색이 소나무색 이라는데, 내 눈엔 노랑으로 보여 남편과 실랑이를 좀 했다.
햇빛과 비 사이에서 어찌 변색하는지 몰겠지만,
내년엔 투명색으로 사야 할 듯해.
쪼그리고 앉아 칠 하는 사이사이
굽혀진 허리와 무릎을 펴고
이곳에서 쉬었다.
나의 천국이 이곳에 있었다.
칠을 다 하고 나니,
옷에 오일스텐이 여기저기 튄 건 물론이고, 신발에도 이렇게 흔적을 남겼다.
버려야 하나~
노동으로 품삯을 번게 아니다. 노동복이랑 노동화값을 제하고 나면,
경험치만 번게 아닐까 싶다.
오후 되어 꽃씨를 심었다.
상추를 보니 생각이 났다. 봄 되면 뿌리려고 사 둔 씨앗 말이다.
봄은 지났지만, 내년 보단 지금이 나으려니 생각했다.
노지 여기저기 피어있는 이름 모를 야생의 꽃이 마음을 이쁘게 물들이는 거 보니
나도 이제 이쁜 꽃을 가꾸는 나이가 된 모양이다.
뒤쪽의 아이비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너무나 잘 퍼지고 있기에, 가지를 자르고
뿌리를 내려 이곳으로 옮겼다.
물을 매일 주는 것도 아니고, 바람을 막아주는 유리창이 없다 보니,
천천히 마디게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고 있나 보다.
키가 자라지 않고 있다. 연초록 줄기가 점점 갈색을 띤다.
그렇게 버티고 강하게 자라거라.
끝까지 잘 자라거라.
24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