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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지막

교회이야기

by 별난 이 2022. 8. 19.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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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부고장이 떴다.

ㄱ권사님이 집에서 천국 가셨는데, 하나뿐인 딸이 미국에서 도착하는 대로

장례절차를 고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딸이 미국에서 들어오는 게 늦어져서 장례가 미뤄지고 있다는 문자가 두 번쯤 더 왔다.

 

ㄱ권사님은 지난 수요예배 때 봤다.

몇 달 전에 남편이  천국에 가신 것을 장례가 끝난 다음에 공지가 되어서

아마도 코로나로 돌아가셨나보다 짐작만 하고 있었다. 

살이 조금 빠졌지만, 우리엄마 만큼은 아니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위풍당당하던 모습이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바로 종잇장처럼 스러지는 걸 목격한 나는,

얼핏 머가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내가 교회의 회계를 맡아 일을 할 때, 총무 권사였다.

세명이 한 팀을 이뤄 교구 일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말을 함부로 하고 상처를 주는걸로, 교회에서 유명했다. 

그래서 그녀가 총무 권사가 되었을 때, 아무도 그녀와 함께 팀을 이뤄 일 하려 하지 않았단다.

암 껏두 모르는 내가 당첨된 거였다.

함께 일하는 두 해동안, 다른 ㅇ권사님과는 대성전에서 큰소리로 우당탕탕 싸웠고,

난 속상해 눈물을 흘린 일이 세 번쯤 된다.

 

그중 하이라이트 에피소드.

주일날 이었다.

ㅊ권사님이 ㄱ권사님을 따라다니면서 약을 올리는 것 같았다. 말 꼬리를 물고 싸움이 난 것이다.

여덟 교구의 목사님과 성도들이 만나는 교구 사무실에서 큰 목소리로 싸우는 것이 아닌가.

챙피하고, 큰일이다 싶어서 얼른 ㅊ권사를  밖으로 끌다시피 모시고 나와 달랬다.

간신히 다독여 보내고 사무실로 들어갔는데,

찬양 연습을 하는 교구 식구들에게 나눠줄 생수 80개와 빵 80개 더미를 

교구 사무실 한가운데로 휙 집어 던지는 것이었다....

주일날, 교회 안, 교구 사무실에서 큰 소리로 싸우는 것도 난생처음 보는 광경인데,

무슨 시장바닥도 아니고 황당했다.

 

"이 빵이랑 생수, ㄱ권사님 개인 꺼 아니에요." 낮고 굵게 한 마디  던지고 

생수와 빵을 일일이 주워 카터에 담고 찬양 연습실로 날랐다.

아무도 이 일에 도움도 말림도 없었다.

오히려 내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난, 임원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 뒷 수습을 다~했다.

짐 생각하면, 그러거나 말거나, 다 버려두고 휘리릭 집으로 왔어야 했다. 정신머리 차리게.ㅎ

 

순식간에 벌어진 일로 가슴이 벌렁거리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찬양 연습실 뒤 벤치에 앉아서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데,

ㄱ권사님 전화가 왔다.

마땅히 사과하는 전화여야 했다.

근데, 왜 싸움을 더 하도록 놔 둘 일이지, 말렸냐면서, 분이 안 풀려서 집에 가는 길에서 전화를 했단다.

난 이런  사람이, 이런 일이, 처음이기에 황당했다.

이때 눈물이 뚝 그친 것 같다.  대신 화가 났다.

뭐 이런 인간이...

 

이 일은 회계 임기 말 즈음에 일어났고 난, 회계 2년을 마치자마자 바로 교회와 거리두기를 했다.

거리두기는 단지 이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만 보이는 교회의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들도 이유가 되었고,

온갖 불협화음을 무마하는 샌드위치 소 역할을 하느라 피곤함이 커진 이유도 있었다.

나는 궁금했다. 교회 안에서 싸우고 악다구니하고, 사람들 공격하면서 막무가내이다가,

교회와 말씀과 기도를 나쁜 행동의 방패막이로 쓰는 사람들...

그 끝은 어디일까..

 

 

같이 일 했던 ㅇ권사님은 5년도 더 된 일인데, 아직도 화가 나 있다.

꼴도 보기 싫어 장례에 참석을 않겠다고 했다.

그럴수록 다녀오셔야 나중에 후회가 안 남는다고 내 친구와의 경험을 전했다.

정작 나는 코로나 확진으로 참석을 못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내 경우, 예전의 분노는 이미 잊어서 딱정이만 남었다.

 

 

몇 달 전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있는 언니를 찾아온 동생과 담소중에 심장마비로 쓰러졌단다. 

그리고 바로 돌아가셨다. 어이없는 상황이다.

 

하나뿐인 딸이 미국서 들어오길 기다리다

모든 장례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화장장으로 직행하게 된,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다.

 

우린 마치 내일이 없는것 처럼 오늘 이순간을 살고 있을때가 많다.

미래의 어느 순간, 아무 흔적 없이 한 줌 흙으로 돌아갈 것을 잊고 말이다.

까마득히 먼 훗날의 일이라 미뤄 두고 있다.

나의 처음은 그러했고, 중간도 이러하니, 마지막은 어때야 할른지 생각하고 고민해야할 타이밍이다.

지금 이 순간이.

 

 

그 곳에선 평안 하시길...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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