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린 버릴 나이가 되었다.
추억도 버리고, 기억도 버리고,, 사람도 버리고, 살림도 버리고, 옷도 버려야 한다.
오늘은 옷을 정리했다.
누군가 옷을 좀 달라고 했다.
요즘 인터넷이고 홈쇼핑에 한 계절 입고 버리는 싼 옷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게 부탁을 하는고...
흠... 두 가지로 이해했다.
당신 스타일이 맘에 드오...
당신이라면 내가 부끄럽지 않겠소....
어느 경우든 꽉 차서 숨 쉴 공간이 없는 장롱을 열정적으로 정리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이사할 때도 어마어마하게 큰 보따리로 동산만큼 정리했다.
삼 개월 할부값을 내느라 힘겨웠던 기억이 아프게 남아있는 옷 보따리들은 동생이 가져갔다.
이번엔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이거나 좀 더 무지막지한 아이템들을 꺼냈다.
신기하게도 꺼내고 솎아내도 여전히 장롱 속은 숨통이 트이질 않아 보인다.
순백의 롱 원피스 앞에서 추억이 떠올랐다.
이 옷은 단 한 번 입었다.
처음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교육을 마치고, 침례식 때였다.
내겐 너무나 감동적이고 가슴 떨리는 행사였는데, 가족은 물론, 구역에서도 그 누구의 축하도 없었다.
남편은 일터에 있었고, 아이들은 너무나 어렸다.
친정이나 시댁은 종교가 다르다 보니, 광고를 할 형편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구역식구들이 참석해서 축하를 해 주고 있었다.
나는... 내 구역장이 오질 않은 거다.
교구 봉사자 한 분이 내게 축하 꽃다발을 전해 주었다.
그분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 옷에는 침례의 장엄한 추억과
결정적인 순간, 구역장 부재의 서운한 기억이 함께 있다.
구제금융으로 우리나라가 경제위기에 빠졌을 때, 그 구역장의 남편이 퇴직을 하였고
중학생 고등학생 자녀에 시어머니까지 모신 구역장이 어려운 살림을 꾸리게 되었다.
누가 알아볼까 머리와 얼굴을 가리고 도로 청소에 나선 모습이 안타까웠다.
난 마트의 생필품을 두 배로 사다 반을 그 집으로 날랐다.
내겐 월급쟁이의 딱 살만한 월급밖에 없었고 다만 카드만 가능했기에, 생필품의 질을 낮춰야 했다.
가령 철원쌀이 6만 원이라면, 4만 원짜리 저렴이 쌀 두 포를 사서 그 집과 나눴다.
2만 원만 오버하면 두 집이 해결되니, 나름, 좋은 상생이 되는 계산법이다
그렇게 몇 년을 살았다. 그 집 딸들이 대학생이 되고 자족할 수 있을 때까지.
그러느라 난 어느새 두 해쯤 묵어 아웃렛 매대에 누워있는 옷만 입었다.
그래도 좋았다. 난 충분히 젊으니, 명품 옷이 필요치 않았다.
지난번 예배 후 식사땐,
내가 늦게 도착하는 걸 알면서도
내 도시락을 챙겨놓지 않고
본인만 먹고 집으로 쉭 가 버리는 바람에,
난 구지 교회로 합류했다가 점심을 굶어야 했다. 어이가 아리마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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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며칠 전 내가 대접한 메밀국수를 갚겠다며 약속을 잡았다.
나 구지 메밀 먹고 싶지 않고,
기브엔 테이크는커녕 그저 기브만 하는 사람이고,
시간 내는 것 자체가 귀찮은 사람이구만,
그냥 상대방 편하게 해 주고자 만나기로 했다.
근데, 약속 장소에 다다르자마자,
오늘 B가 오는데 그녀가 이혼한 사실을 모른체 해말란 당부를 한다.
자신이 비밀을 노출한 사실을 감추고 싶은 모양이다.
나 B와 잘 아는 사이도 아니다. 그 사람과 어정쩡하게 식사를 함께 한다? 차를 마신다?
오 ~~ 노~~
자리에 앉지도 않고 식사를 않겠다고 자리를 뜨려는데,
그럼 B한테 머라고 설명을 하냐고 난처해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아니라 그녀??
아침에 장소를 정하느라 통화를 할 때도 B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때 알았다면 내가 약속을 잡지 않았을 거다.
나와 통화 후 그녀를 부른 거다.
내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편리만 취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오면서,
내가 식사를 거부한 건, 나한텐 확실하게 옳다.
그러나 그들에겐 교만이었을까? 반문해 보았다.
사람관계에선 경우가 있고 예의가 있다.
그리고 예의는 그 사람의 됨됨이 이다.
인격 예의 경우 다 무시하고 눈앞의 본인 이유만 있다면, 그건 이해해 줄 필요가 없다.
한참 후 전화가 왔다.
너무 큰 실수를 한 것 같다면서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했다. 이미 다 아는 듯, 눈치 하나는 구단이다.
마지막으로, "이제 나랑 식사 약속 안 잡겠네? "하면서 전화를 마무리 한다.
마자요, 당신, 오늘부로 나한테 짤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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