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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

일상의 이야기

by 별난 이 2023. 7. 1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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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한살림>에 들렀다.

우리 집 여름 최애 메뉴인 콩국수 재료  몇 가지를 주섬주섬 들고 계산대에 섰다.

계산대에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있는데, 회원 번호 입력이 그것.

아, 근디, 내 번호가 갑자기 호로록 기억에서 날아가버린 거다.

7로 시작했는데... 7이 많았는데... 설마...

맞다, 아무렇지도 않게 예측하지 못한 어느 순간, 스르륵  머리가 하예지는 거다.

.

.

.

 

그 순간,

지난여름 땡볕에 내 자동차를 찾느라 생고생을 했던 청년들의

뜨악한 표정과, 경멸에 가까운 시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난 종합병원에서 주기적으로 검진을 받고 있다.

그날은  헐레벌떡 병원에 도착한 시간이  예약 시간에 임박해 있었다.

병원 마당엔 도착했으나, 진료 시간을 맞추려면 차를 버리고 달려 올라가야 할 판이다.

오전 그 시간대엔 지하 주차장도 거의 만차여서 주차 공간 찾아 삼만리를 해야 한다.

기웃거리며 헤매느라 시간을 보내고 진땀을 뺄 생각에 아찔한 터에,

눈앞에 똬악~ 발레주차 안내판이 보이는 거다.

와우, 대박,

음식점에서나 봤던 발렛파킹 서비스가, 온통 두려움으로 아찔하게 가슴 쪼이는 대학 병원에 있다니..

이 얼마나 단짠의 조화란 말인가...

얼른 차를 맡기고  부랴부랴 진료실로 뛰어 올라갔다.

진료를 마치고, 약도 한 바구니 받고, 커피 한 잔을 들고 느긋하게 발렛 파킹 장소엘 갔다.

차 번호 9040을 댔더니 담당자, 당황해하며 차 키를 열심히 찾는다..,

'처음이라 서투네..?'

잠시~잠깐, 내 키에 한눈에 알아볼만한 인형을 달아놓지 않은 게 후회가 되었다.

그는 동료를 불러 차 키를 여기저기 찾더니, 나중에는 급기야 주차장을 돌며 차를 찾기 시작했다. 

그들을 돕겠다고 나도 함께 주차장을 돌았다. 마침내 멀리서 눈에 익은 차가 똬악 보였다. 딱 봐도 내 차.

그래도 확인차 가까이 가보니.... 아뿔싸...

차 번호가 보인다. 9040이 아닌 1090을 달고.

그러고 보니 딸내미 전화번호가 9040인데,

전혀 비슷하지도 않은 숫자구만, 어떻게 그렇게 혼돈이 왔는지 당최 나도 모르겄다..

.

.

.

 

그 하얫던  순간이 지금 다시 재생이다.

내 핸펀 번호로 확인을 시도하는데, 것두 아님.

이름으로도, 확인이 어렵단다.

머리가 띠엄띠엄 알려주는 대로 애꿎은 버튼만 이것저것 누르다,

한 참 후, 비로소 유효한 숫자 조합, 제대로 된 회원번호가 떠올랐다. 것두 차암 신기하다.

그러나 카운터 앞에서 온통 하얘진 머릿속과 버튼 사이에서 씨름하는 순간은 수천만 년의 시간이 흐른 것만 같았다.

등에는 땀이 주르륵,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ㅠㅠ

 

아들이 태어나고 친환경 먹거리에 관심이 생겨 가입하게 되었으니 족히 30년은 된 회원번호이다.

그 당시는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고, 정해진 요일에 배달을 해주는 시스템이었는데,

인터넷  주문과 동시에 통장 계좌 이체를 해야 했다.

당시 내 명의의 통장이 단 한 개도 없었기에 남편 명의로 회원가입을 했고,

문자 서비스를 받기 위해 내 전화번호를 등록을 해 놨었다. 

그걸 통째로 까맣게 잊어먹은 거다.

그리고 남편 이름과+ 남편 전화번호, 엉터리 조합으로 회원확인을 시도하고,

회원번호를 마구 눌러댄 거다.

어느 순간, 다섯 개 숫자 조합의 회원번호가 마법처럼 생각났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예전의 고요와 평화가 찾아왔다.

정전으로 멈췄던 기계 밴드가 전기가 들어오자마자 다시 돌아가듯 말이다.

이건 마치 스티커로 구멍 난 곳 때워놓은 것 마냥 임시로 복구가 되었을 뿐이니 온전한 안심은 아닌데,

그렇다고 딱히 대책이 있는 게 아니니 더 답답하다.

앞으론 이런 일에 익숙해져야 할 거다. 더 자주 맞닥뜨릴 터이니.ㅠㅠ

당황스럽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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