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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600년,매혹의 걸작들

일상의 이야기

by 별난 이 2022. 11. 1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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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빈필에 갔을 때 한 가지 팁을 갖고 왔었다.

바로

합스부르크가의 컬랙션 전시가 있다는 것과,

빈필 관람자에게는 20프로 DC의 혜택이 있다는 것.

우리가 누군가.

이런 고오급 정보는 알뜰하게 꼭  써먹어야

비로소 잘 산 것 같은 요상 취향의 제군들 아닌가.

 

그래서 다시 뭉쳤다.

평일 오후, 한가한 국립중앙박물관을 기대하고 갔는데, 

웬걸~~~인파가 장난 아니다.

 

저기 계단 위의 깨알 같은 학생들은 그저 시작에 불과한 그림이었다.ㅠㅠ

 

친구가, 일이 늦어졌는지 좀 늦겠다고 한다.

좀처럼 늦는 법이 없는데,  최소 20~30분 전에 도착하는 친군데,

늦. 는. 단. 다. 

나더러 먼저 관람하고 있으라는 거 보니, 10~20분 늦겠다는 얘기는 아닌 모양.

많~~~ 이 늦겠다는 얘기로 들렸다.

해서, 난생처음, 늘 해보고 싶었던 걸 해 보기로 한다.

건 바로... 박물관 안, 카페에서 통창으로 바깥 구경하며, 유유자적 하기.

 

늘 잰걸음으로 들어가 동행을 만나고,

관람 조차도 숙제하듯 하고,

공부하듯 읽고,

무슨 대~단한 보고서 쓸 것 마냥 사진 찍고,

그러다 주차요금의 압박으로 휘리릭 집으로 향했던 관람 자세...

이젠  바꾸고 싶었다.

 

오늘, 수업중에, 떠듬이로 읽었던 용산 CNN기사를 찬찬히 복습해보기로 맘 먹구,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근디,,,,

라떼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으니,

내 바로 뒤에.... 외쿡인 둘이.... 자리를 잡는다.....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나, 감히 초딩용쯤 되는 수준의 교재를 꺼낼 용기가 나질 않는다..ㅠㅠ

흐이구...

 

공부는 웬걸, 패쑤하고, 핸펀과 놀구 있으니,

친구가 정신이 쏙 빠져서 나타난다.

용산 전쟁기념관엘 갔다 왔단다.ㅋㅋㅋ

내가... 수년 전에 착각했던 바로 그 포인트에서 대뜸 공감이 되었다.

에고.. 우리 늙었으.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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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전시는 합스부르크 600년 세월 동안의 컬렉션이다.

합스부르크는

1273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된 루돌프 1세로부터

1918 세계 1차 대전 후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난 카를 1세까지

600여 년간 명실공히 유럽 역사의 중심에 있었고, 유럽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 600년 세월 동안 합스부르크가 수집하고

빈 미술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걸작  96점을 오늘 전시한다.

 

1892년 고종이 수교 기념으로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했던 '갑옷과 투구'도 함께 전시되어

한. 오 수교 130년을 특별하게 장식한다.

 

기다리는 줄이 장난 아니다. 30분 이상은 대기했다. 

대부분 단체 학생 관람객. 우리 땐, 숙제로 내줘야 겨우 관람했었던 거 같은데, 요즘은 아그들은 세련이다.

 

.ROUND 1>

 

그 당시 남자들의 권위를 보여 주는 게... 갑옷이었다.

전장에 나가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역할이 전부가 아니었나 보다.

힘과 권위와 재력을 동시에 과시 중.

그동안 갑옷에 대한 나의 의문이 풀렸다.

갑옷을 어떻게 입었을까..

그저 과시용이나, 장식용 하니었을까...

불편하지는 않았을까... 에 대한 호기심을 한 번에 풀어주는 친절한 영상이다.

 

ROUND2>

루돌프 2세의 예술의 방.

루돌프 2세는 황제가 된 후 수도를 프라하로 이전하여 많은 예술가와 장인들을 불러들여

프라하를 보헤미아 예술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다양한 예술품을 수집. "예술의 방"에 전시하여

현재 빈 미술사 박물관의 공예관을 만드는데 기초가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사담 한 스푼,

합스부르크가는 혈통을 유지하고자 근친간의 결혼을 하였고

집안 대대로 그 후유증이 나타났는데, 

건 바로 주걱턱.

그 주걱턱을 가리기 위해 목을 감싸는 저런 옷을 입었다고 한다.

 

누금 장식 바구니>

인도 서부에서 만들어져서 리스본을 통해 유럽으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

사이즈가 아주 작은걸 감안하면, 세공이 매우 섬세하다는 점.

마노 그릇>

마노 그릇과 받침대를 도금 은제 장식으로 연결하였다.

왜 금이 아니고 은이었을까... 생각하다가

한때, 은이 금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은 시절이 있었고,

스페인이 멕시코와 페루를 정복했을때, 은광에 열광했었다는 걸 들은 기억이 났다.

대략 비슷한 시기인듯.

 

조가비 모양 그릇>

연옥을 조각하여 그릇을 만들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으로 장식

난, 이렇게 큰 연옥 자체가 놀랍다.

 

연수정 꽃병>

하나의 큰 연수정 덩어리로 병의 몸통을 만들고 금속 장식을 덧댔다.

몸통은 조각이 되어 빛이 반사되고 굴절되는 것까지 고려했다.

연수정 꽃병이라니..

 

누워있는 비너스와 큐피드>

작지만, 하나의 옥수로 자연의 색을 절묘하게 이용해서 조각을 했다.

머리카락 색과 바닥의 색을 보소~

 

ROUND 3>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의 방 

 

페르디난트 2세 대공은 아버지 페르디난트 1세가 오스트리아 영지를 세 아들에게 나누어 상속할 때,

서쪽 티롤 지역을 물려받았다.

그는 티롤 성 내에 수집품을 전시하는 특별한 공간을 마련.

직접 진열장을 설계하고, 전시품의 재질과 성격에 따라 진열장의 소재와 벽 색깔까지 결정했단다.

그것이 최초의 박물관이 되었다.

 

 

헤라클레스의 곤봉을 든 페르디난도 2세>

종교 대립이 심한 티롤에서, 종교에 온건한 입장을 취해 , 다양한 종파와 예술이 공존하고

르네상스의 인본주의가 유입되어, 그의 소장 예술품에서도 그 영향이 보인다.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가 있는 접시>

세숫대야만큼 큰 사이즈.

바깥쪽 원의 부조에는 앗시리아에게 포위당한 유대 도시 베둘리아를 표현했단다.

신앙이 깊은 여인 유디트는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환심을 산 후 그의 목을 베어 

고향을 구했다는 성서 이야기를 부조로 표현했단다.

그 안쪽 부조 내용은 아직 분석 중.

 

 

 

 

 

 

 

 

 

 

 

 

 

 

 

 

 

 

 

 

 

 

 

야자열매 주전자>

당시 야자열매는 바다에서 자라는 나무의 열매로 알려져 경이로운 물건으로 여겨졌다.

인도로 떠난 유럽인들이 항해 도중 바다에 떠 있는 이것을 발견하여 바다에서 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단다.

 

 

성 히에로니무스>

히에로니무스는 돌로 가슴을 치며 고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가 페루지노는 라파엘로의 스승이며 이탈리아 작가였기에,

참회하는 히에로니무스를 이탈리아 풍경을 배경으로 담았다.

 

우물가의 리브가>

아브라함은 종에게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가 그 족속 중에 아들 이삭을 위한 아내를 택해 오라 명한다.

이는 그가 거주하고 있으나 도덕적으로 타락한 가나안의 여인을 며느리로 맞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종은 나홀 우물가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이삭의 아내를 기다린다.

 

'우물가로 나온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창 24:14'

 

성 가족>

예수의 탄생

 

 

합스부르크가는 스위스 북부지역의  합스부르크 백작이 다스리는 자그마한 지역이었다.

독일에 황제가 없던 대공위시대이후,

<강력한 왕>의 출현을 꺼린 독일 제후는, 힘 없는 합스부르크 집안의 루돌프 1세를 독일의 국왕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끊임없는 정략결혼을 통해

루돌프 1세는 오스트리아를,

후대의 막시밀리안 1세는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를.

필피프 1세는 에스파냐를 통치.

종국에는 카를 5세때, 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을 통치하기까지 이르른다.

 

 

카를 5세는

스페인을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을 얻었을 정도로 광활한 영토를 다스렸다.

그러나, 신성로마제국의 배후들은 황제의 권력이 강해지는 걸 견제하여, 모든 영토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을 반대했다.

그리하여

아들 펠리페 2세에게는 스페인 영토를,

동생 페르난도 1세 에게는 오스트리아 영토를 물려주어 

합스부르크 왕가는 스페인을 다스리는 계열과 오스트리아를 다스리는 계열로 나뉜다.

스페인의 합스부르크는 그 뒤로 200년간 이어졌다.

'무적함대 스페인'은 아들 펠리페 2세 때의 별칭이다.

 

카를 5세의 공식 칭호가... 이케나 길다.ㅠㅠ

굉장하쥬~?

 

스페인 왕 펠리페 4세와 왕후

 

흰 옷을 입은 마르게리타 테레사 공주.

펠리페 4세의 두 번째 부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나 사이의 딸이다.

후일, 외삼촌인 레오폴트 1세와 결혼한다.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의 브뤼셀 화랑>

왼쪽 아래 모자를 쓴 사람이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이다.

 

동방박사의 경배>

아기 예수를 탄생을 축하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이브>

 

 

셔벗용 식탁 장식>

카를 6세 황후가 소유했던 셔벗용 그릇.

조가비와 달팽이 껍데기로 만든 셔벗 그릇에는 식구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카를 6세와 황후, 마리아 테레지아를 비롯한 세 공주,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이자 사위인 프란츠 슈테판의 얼굴이다.

 

ROUND4>

 

마리아 테레지아>

아버지 카를 6세가 1740년 사망하자 오스트리아, 헝가리, 보헤미아 세 왕국의 왕으로 등극.

그러나 여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될 수 없었던 규약 때문에,

1745년 남편 프란츠 스테판이 프란츠 1세로 황제에 즉위.

프란츠 1세가 1765년 갑자기 사망한 후엔, 아들 요제프 2세가 황제 지위를 계승한다.

 

작곡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은 교향곡 48번 2악장을 마리아 테레지아를 위해 작곡했다.

음악도 들을 수 있도록 했는데,  사람들에 밀려 음악 감상까진 어려웠다.

요제프 2세>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들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엄마 마리아 테레지아와의 정치적 동거가 시작된다.

마리아테레지아와 평화의 여신상>

마리아 테레지아는 5세때 만난 9살 연상의 남자아이와 평생의 친구로 지냈다.

성년이 되어 그와 결혼을 하고 16명의 자녀를 낳았으며 평생 사랑했다.

남편의 사망후, 남은 생을 쭈욱 검은 드레스를 입고 그를 애도했다.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

1766년 4월, 가운데 요제프 2세 황제 부부가 앉았고, 왼쪽에 신혼부부, 베네치아의 두 명의 대공,

그리고 후일 마리 앙뜨와네뜨가 될 대공을 포함하여 왕위 순서대로 앉았다.

여기에 마리아 테레지아의 모습이 없는데,

아마도 1765년 남편의 사망과 관련하여 자리에 참석을 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한다.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존경을 표하는 행렬

마리아 테레지아의 장례에 국민들이 행렬을 길게 이루며 존경을 표하고 있다.

 

 

프랑스 왕비 마리 앙뜨와네뜨>

마리아 안토니아는 1774년 프랑스 루이 16세와 결혼한다.

프랑스 국민들은 '정치에 간섭하는 오스트리아 왕비' 라며 미워했고, 

루이 16세 때 국고가 바닥을 보일 때는, '사치하는 왕비'라고 미워했다.

프랑스혁명 후 형장의 이슬이 된다.

 

바람난 신부를 둔 신랑>

왁자지껄한 결혼식 피로연장의 모습이다.

소년이 신부의 볼록한 배를 만지고, 늙은 신랑은 신부에게 속았음을 알게 된다.

이 시기 플랑드르에선 교육적인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풍속화가 그려졌는데, 

얀 스테인은 대표적인 풍속화가로서, 부부의 정절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성 세바스티안>

로마 황제 근위대장인 세바스티안은 자신의 신앙을 숨기고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을 도왔다.

이를 알게 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활을 쏘아 죽일것을 명령.

그러나 5개의 화살을 맞았음에도 그가 죽지 않았음을 알게된 기독교인에 의해 목숨을 건진다.

그는 후에 전염병을 막는 수호성인이 되었다.

사냥한 새>

이 시기에는 새와 동물을 그리는 풍조가 유행.

 

 

ROUND5>

 

라파엘로의 시스티나 성당 태패스트리 연작>

레오 10세 교황은 성경의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드로와 바울의 삶과 기적의 장면을 라파엘로에게 의뢰.

라파엘로가 디자인한 그림을 밑바탕으로 브뤼셀의 직조공 피터르 판앨스트가 태피스트리를 만들었다.

완성된 작품은 높이 5미터, 총길이 42미터의 장대한 크기였고,

 그중 7점은 시스티나 예배당에 설치되었다.

그는 이 공로로 바티칸 궁전의 태피스트리 직조공으로 임명되었다.

 

왼쪽:베드로의 삶 두 번째, 기적의 물고기 잡이>

난 성경 속의 배가 이렇게 작은 사이즈였는지 이제서야 실감했다.

하긴, 그때 그 시절의 상황을 모르니...

 

오른쪽: 사도바울의 아테네에서의 설교>

10점 중 7점은 바티칸에 전시되어있고, 3점 중 2점이 이곳으로 날아온 것이다.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황후, 엘리자벳>

우리에게 뮤지컬 '엘리자벳'으로 알려진 '시시' 

원래는 언니가 프란츠 요제프 1세와 결혼하기로 되어있었으나,

황제가 엘리자베스에게 첫눈에 반해 예정에 없던 황후가 되었다.

시어머니와의 불화,

자유로운 성격의 소유자로서 엄격한 왕실 생활에 부적응과 고립, 

결국 제네바 여행 중 이탈리아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한다.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아들 황태자 루돌프의 황태자비 스테파니>

우울증을 앓던 루돌프가 내연녀와 자살하자 재혼해 헝가리에서 살았다.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겐 엘리자벳 사이에 황태자 루돌프가 있었다.

엘리자벳과 시어머니와의 불화로 그의 교육은 시어머니에게 맡겨졌는데,

루돌프는 우울증으로 자살하게 된다.

후계자를 잃은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조카인 프란츠 페르디난도를 후계자로 지명,

그는 강경개혁 정책을 펼치다 민족주의자들에게 반감을 산다.

결국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에게 암살당하고,

이는 세계 1차대전의 도화선이 된다.

황제는 조카의 아들인 카를 1세를 황제로 지명하지만, 세계1차 대전 패전으로 왕정은 끝난다.

이로써 합스부르크 600년의 역사가 막을 내리게 된다.

 

한오 통상 수교 130년을 맞이하며

1892년 고종은 오스트리아와 통상 수교를 맺는다.

당시 고종은 청나라와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서구 여러 나라들과 수교를 맺었다.

오스트리아는 러시아를 견제하고 조선항에서 자국의 상인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으며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했다.

이런 서로의 이해관 계속에 고종은 수교 기념 선물로 갑옷과 투구를 선물했다.

그 선물이 130년의 세월 동안 보존되었다가 오늘, 이곳으로 날아와 전시되었다.

오늘 이 거대 전시가 가능하게 된 장본인이라 생각되었다.

 

이 순양함을 통해 선물이 전달되었단다.

이번엔 준비 없이 오게 되어서 오디오 가이드를 빌렸으나,

오디오 가이드가 맘대로 앞서 나가는 바람에, 걍 배경 소음 정도로 들어야 했다.

담번엔 가이드온을 설치. 구매해서 오기로 맘먹어본다. 오늘은 이어폰도 없고...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더 많은 관객이 모여있다.

매표소엔 <오늘 티켓 마감> 이란 표지판이 서있고

좀 일찍 일찍 서둘러야 할 듯하다.

 

급 허기가 몰려온다.

중앙박물관 내 1층에 위치한 경천사탑by 두레 식당으로 갔다.

이곳은 바깥 풍광이 시원해서 애들 델꼬 가곤 했는데,

아뿔싸.

조리실에서 우당탕탕 설거지며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절레절레했던걸  깜빡했다.

몇 년이 지났구만, 아직도 똑같은 소음이다.

에궁.

허기진 배만 채우고 얼른 일어섰다.

덕분에 해 지기 전에 집에 올 수 있었다.

 

경천사지 10층 석탑>

늦은 오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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