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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리포트

일상의 이야기

by 별난 이 2022. 8. 19.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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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기가 싫다.  눈을 뜨고 하루를 살아내기가 두려워진다.

간밤에 잔 시간은 7시간. 그  7시간 동안 내내 꿈을 꿨다.

모처럼 길게 잤음에도 불구하고 잠의 질은 좋지 않다는 결론.

게다가 두어 번 식은땀을 흘렸다.

문제는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지내느냐...

 

D-1

8/13 토

지난 토욜 저녁, 목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전 날 저녁에 으슬으슬 춥기도 했다.

올여름 선풍기 바람에도 에어컨 바람에도 으슬거렸으니, 건 그러려니 했다.

근데,  감기는 보통 코부터 시작하는데, 바로 목부터 신호가 와서 이상했다.

밤에 열이 나기 시작하더니, 고열로  잠을 설쳤다.

고열 때문인지, 몸살에, 위도 더부룩했다.

마침 시골집엔 상비약이 없었다. 늘 먼가를 바리바리 싸들고 다녔는데, 복용약은 리스트에 없었던 것이다.

20년 동안 건강을 걱정할 필요가 없이 짱짱했던건 사실이다.

핸드백에 가지고 다니던 비상용 애드빌과 타이레놀 몇 알, 소화용 효소가 전부.

새벽 6시에 애드빌을  먹고  잠을 4시간 정도 잘 수 있었다.

 

D-2

8/14 일

느낌이 쌔하다.

코로나 백신 3차를 1월에 맞았으니, 내게 남아있는 항체는 다 사라졌을 시점이다.

유투브 예배가 끝나고 느지막한 오후 2시경, 마당에 있는 남편에게 소리를 냅다 질렀다. 

시골이라 병원도 없고, 약국도 하나밖에 없는데, 그나마 연휴의 낀 일요일이니, 것두 틀렸다.

처음으로 시골이 늙은 우리들이 살기에 불리하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은 자기 할 일 다 하고,  후환이 두려워 마지못해 느그작느그작 움직인다.

 '귀찮아 죽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럴 땐, 좀 빠릿빠릿하고 나를 염려해주는 다정한 남자를 구할껄....하고 후회된다.

편의점에서 자가 키트랑 혹시 모르니 감기약을 사 오라 했다.

누군가 '감기처럼 가볍게 지나간다.'고 얘기한 걸 그대로 믿고 참고 견딜만할 것이라 생각했던 거 같다.

근데, 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자가 키트와 판콜을 사 온 남편.

자가 키트는 2개 1세트 구성이다.

늘 남의 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머릿속이 하얀 것이,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당최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난다.

사용 설명서를 꼼꼼히 읽었다.

첫 번째 키트는 묵묵 부답.

네이버에 물어보니, 무효란다.

다시 두 번째 키트에 테스트를 하니, 엷게 두 줄이 보인다.

옅은 색이라고 안심하면 안 된다, 것두 확진이다.

허얼~~~

 

이 와중에도 남편은 내 옆에 없다. 자기 몫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저 짝에서 티비 시청 중.

 

목요일은 아들이랑 킴스에서 장을 보고, 피자 뷔페에서 점저를 먹었다. 

그 아들은 멀쩡하다.

금요일엔 남편이랑 하나로마트에 들르고, 장미 산장에서 곤드레밥을 먹었다.

그 남편도 멀쩡하다.

난 어디서 걸린 걸까??

 

왜 나만 걸린 걸까?

우리 집 최약체가 "나"?

장미산장 곤드레밥 한상

 

 

그날 밤, 애드빌과 타이레놀과 판콜을 아낌없이 털어 넣었다.

그래도 열은 시원하게 떨어지지 않았고, 나는 밤새 끙끙 앓았다.

목이 너무 아프고 입맛이 써서 암 껏도 못 먹으니,

누군가 두유나 우유, 마실 것이라도 부지런히 먹으라고 조언한다.

집에 있는 두유, 요구르트, 미숫가루, 유자차, 닥치는 대로 삼킨다.

아, 어린이용 요구르트를 한 번에 다 못 마셔서 남겼다가 몇 번에 나누어 마셨다.

그 정도로 입맛이 쓰고 목이 아팠다.

 

D-3

8/15월

아침, 남편의 손이 이마에 얹어지는 게 느껴졌다. 평상시 따뜻한 손이었는데, 시원하다. 아직 열이 있다는 얘기.

남편의 안전을 위해 침대를 따로 썼는데, 난 이 한여름에 돌침대를 켜고 잤다.

오늘까지 광복절 연휴라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그저 시간이 흐르길 기다려야 함.

친구가, 더 악화되기 전에 서울로 빨리 올라오라 하는데, 

남편과 나는, 그 넘의 감기처럼 가볍게 지나간다는 헛소릴 믿고,

절대로 악화되지 않을 꺼라는 요행을 바랐던 것 같다.

우린 늘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대단히 위험한 사고의 소유자들이다.

 

D-4

8/16화

빨리 서울로 가서 병원엘 가야 하는데, 남편이 또 마당에서 가드닝 삼매경이다.

얼마 전에 가드닝을 해 주던 업체에서 우리 집 일을 그만하겠다고 했다.

정작 집주인은 아뭇소리 않는데, 뒷집에서 우리 나무를 여기를 잘라라 저기를 잘라라 

요구사항이 많아 성가셔졌나 보다.

동네 사람들이 우리가 얌전하니 '가마니'로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지난번 담장 때도 그렇고....

한창 풀이 올라오는 이 타이밍에 그만두는 바람에,

우리, 올 봄에, 광에 있던 잔디깎이며 송풍기며 죄다 버렸는데, 도구도 없고,

대신할 업체를 찾아보기도 전에 내가 덜컥 코로나로 들어 누웠으니,

남편이 대신 밖에 나가 열씸히 일을 하는 거다.

벌이도 없고, 할 일도 없고, 시간만 괜시리 많은데, 남편이 하는 것도 괴안겠다고 잠시 생각했다.

내가 또 소리를 질렀다.

서울을 나의 코로나 때문에 가야 하는 상황이 귀찮은 게 분명하다.

 

질병관리청인지 보건소인지에 전화를 건다.

치료를 하려면 어차피 약 처방을 받아야 하는데, 원스탑 병원으로 직접 가는 게 낫지,

연휴 끝 역대급으로 확진자가 많을 시점에 보건소에서 줄 길게 서서 마냥 기다려 검사를 받아야겠냐고 화를 냈다.

절대로 땡볕에서 나를 위해 대신 줄을 서 줄 사람이 아니기에.

그의 관점은 비용이었을 것이다.  나의 안전. 나의 회복 이전에.

 

아는 병원으로 갔다. 걍 단번에 코로나 확진. 오늘부터 7일간 자가격리란다.

헐~ 이미 아플 거 다 아팠는데, 지금부터라니...말이 안 됨.

약도 7일간 꼬박 먹어야 한단다. 것도... 말이 안 됨.

에릭쌤이 베타딘/프로폴리스 스프레이가 목에 효과가 있다고 전했다.

집에 뒹굴고 있는 스프레이가 생각났다. 몇 년 전에 권사님이 호주서 사다 주신 것이었다.

고놈 요번에 알차게 뿌렸다. 금방 효과를 보았다.

그땐, 이런 거 왜 주시나,.... 해서 감사 인사를 대~충 했었는데, 이번엔 진심 고마웠다.

반성했다.

 

 

 

 

 

 

 

 

D-5 

8/17 수

처방약을 먹었더니 열이 확실하게 떨어졌다. 괜히 생 고생한것 같다.

지난번 백신 3차 맞고  5일을 두통으로 데굴데굴 굴렀는데, 그것 보단 약했다. 3일 정도로 끝났으니...

백신 후유증때도 처방을 받고 치료를 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화욜.수욜.목욜 모임과 수업에 불참 고지를 했다. 약속이 없으니 허전할 줄 알았는데, 웬걸 시원했다. 

이젠 사람 만나는 게 힘이 부치나 보다. 쉼이 좋은 걸 보니.

나의 코로나 확진 소식에, 다른 친구들은 톡으로 안부를 묻는데, 딱 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요즘 우리 '카톡 거리'에 갇혀 사는데, 이 친구가 왜 핵인싸인지 완벽하게 이해 완료.

담부턴 나도 아낌없이 시간과 전화를 걸어 말 한마디라도 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한참 전에 딸내미가 등록해 준 넷플릭스가 효자 템이 되었다.

하루 종일 주야장천 영화며 시리즈 뽀개고 있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영국, 스위스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주로 봤다. 다시금 스멀스멀 여행이 고파진다.

이번엔  자유여행으로 다녀오면 좋겠는데, 자전거 타구 여유도 부려 보고...

하...근데, 이 남자는 절대로 그걸 계획할 사람도 아니고, 동행해 줄 사람도 아니다.

허이구....내 파트너~~

 

D-6

8/18 목

열도 떨어지고 잘 먹어야 한다 하니, 부엌에 들어가 음식을 했다.

재료가 떨어지면, 두 남자가 장을 봐 와야 한다고 했더니, 서로 미룬다.

헐~

저런~

아들놈은 나가서 지 알아서 먹겠단다.

남편은 그놈을 시키란다.

 

코로나 걸린 환자가 코로나 안 걸린 멀쩡한 식구들 식사 차려주는 거 말이 안 된다.

내가 아플 때 나를 챙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중차대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 이 남자가 원래 이 정도로 수준 미달인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구만, 내가  습관을 잘 못 들였다.

늘 희생하기만 하는 것, 것두 '건강한 관계'의 실패 원인이다. 

 

설거지는 각자 알아서 하라고 했더니, 싱크대가 지저분하다고 '가정주부가~'로 시작하는 잔소리가 나온다.

너가 할 일 대신하기 싫다는 얘기다.

이 남자에게 나는 단지 '부엌뎅이, 무수리'였나 보다.

걍 굶으세요~

 

넷플릭스가 가능한 티비가 거실에만 있다. 거길 내가 모처럼 장악하고 있다. 

확진 덕분이다.

아들이랑 남편은 내게서 옮을까 봐 각자의 방에서 알아서 격리 중이다.ㅎㅎㅎ

 

D-7

8/19 금

인생의 많은 것이 보이는 코로나 어택이다.

오늘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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