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자연만 보고 갈 순 없다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가 서귀포 근처에 있다 하여 찾아갔다
이곳 성의 이름이 대정현.성
마을을 둘러싼 성곽이다
어디 돌담 찍으러 멀리 여기저기 다닐 필요 없겠다
제주도에 오면 널린게 돌담이니...
제일먼저 우리를 반기는건
추사관.
김정희의 역대의 작품인 <세한도>를 본따 똑같이 지었다고 한다
그 설명이 여기에 써있다
55세에 제주도에 유배왔고, 59세 되던해
생애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세한도를 제자인 이상석에게 그려 주었다.
이상석은 스승이 유배된 동안 스승이 제일 좋아하는 귀중한 책을 연경에서 구해다 주었다고 한다
추사는 그 정성에 고마운 마음의 표시로 세한도를 그려주었다고 한다
찐 제자다...
이상석은 중국의 대가, 16인의 문인들로부터 세한도에 대한 감상평을 받아 세한도에 더했다
또한 국내 대가들의 평가도 더해졌다.
그래서 세한도가 그 진가를 발한다
55세 되던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제주도로 유배를와 9년을 지냈다.
그중 송계순의 집에서 지내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이곳, 강도순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고한다
강도순은 그 당시 마을의 최고 부자.
유배지의 담장엔 가시나무를 심어야 했다고..
대문밖을 나가지 못하고 마당 안쪽에서 바깥을 내다봤다면...딱 여기까지 였겠다
그가 보낸 서신엔...
마당에서 왔다갔다 거닐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한다
참 겸손한 마음이다
황토벽에 걸린 느을의 붉은 햇살
추사는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제주의 유생들에게 학문과 그림을 가르치는데 일조를 하고..
추사관 안으로 들어가니 비로소 보이는 추사체.
거의 탁본이다
그리고 왜. 유배를 오게 되었는지. 설명이 있다
1830년 윤상도 부자가 초조판서와 어영대장등을 탐관오리로 탄핵하다
오히려 군신간에 이간질했다는 이유로 추자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10년지난 1840년, 윤상도 부자의 죄를 다시 논하게 되자
윤상도 부자의 상소문을 추사가 초안했다는 이유...다.....헐...
추사관 내부
추사관 들어가는 입구의 계단.
추사의 굴곡진 삶을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