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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그리된 이야기

봉사

by 별난 이 2014. 3. 9.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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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기로 한 여행계가 또 무산되었다.

계원이 달랑 네명인것이 늘...항상...문제다.

네명...이상 만나는건 정신 사나워 별루 좋아하질 않았다.

게다가...코드 맞는 사람끼리 만나다 보니...많은 숫자가 모여지기 힘들엇다.

네명은...여행가기 딱 좋은 숫자 이건만, 반면, 네명중 한 사람이라도 무슨일이 있어 동참못할경우엔

의리 차원에서 모두가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되는거다.

어쨋든, 올해에도 또, 여행약속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단 한사람, 남편밖에 없어 보였다.ㅋㅋ

 

다른 모임의 그 엄마도 그런 상황이 되어 몇년째 곗돈만 쌓이고, 여행을 한번도 못갔다며, 파트너 한명만 있으면 아무데라도 가고싶다고 했다.

나, 왜 이렇게 오지랖인지....내가 파트너 되어줄께....하고 내뱉었다.

내가 왜 그런 상황을 정리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건지...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그릇된 책임감이다...ㅠㅠ

그건...그녀가...해결하고 정리해야하는 사항인데...내가, 분별력이  없어 보인다...

 

그리하여.

여행상품을 고르는데...

갑자기 옛날 일이 주마등같이 지나간다.

 

 

우리가 만난건 울아들 고1때 학기초 반모임을 한 날이다.

나, 별루 잘난 아들 아닌 탓에 학교생활을 전혀 하지 않으나, 학기초 모임엔 항상 참석하였다.

그래야 담임샘 성향이나 반 분위기 머 그런거에대한 감이 오니까.

그날 모임엔 울반 엄마가 아닌 선배 어머님도 동참하였는데, 학교 봉사단 단장이라고 했다.

어디서 조사를 이미 다 하고, ㅅ 어머님을 1학년 봉사단장으로 점찍고, 의사를 타진하러 참석한거였다.

그런데, ㅅ 어머님은 그 역할을 고사하고...

불똥이 내게로 튀었다.

아무도..생색도 안나고, 고등학교 성적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일을 맡고싶지 않아했다.

나, 거절을 완고하게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학년 봉사단장님,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했는지, 어거지 부려서,

어부지리로 1학년 봉사단장을 맡게 되었다.

평상시...

신앙인이, 교회 안에서만 봉사를 할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봉사를 해야한다고 생각해왔고,

언젠가 때가 되면 그리할것이라 생각해 왔었다.

<그 때>가, 내가 생각한 <그 때>보다 일찍 당겨진거 뿐이었다.

게다가...사춘기로, 입시로, 맘고생 많을 울 아들들과 함께하는 봉사라면 더더욱 의미 있을것도 같았다.

 

 

그렇게...우리의 1학년 봉사단은 창단 되었고 구성되었다.

그러나...막상...봉사단을 맡고 보니, 이거, 척박한 땅이었다.

난, 고딩 사내아이들의 봉사 일감을 발로 찾아 다녀야 했다.

사십명이 넘는 사내 아이들이 한꺼번에 들어가 봉사을 할 수 있곳? 그다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애들의 시간을 절약해 주려면, 학교에서 가까운 기관이어야 했다. 

해서, 서초구에서 송파구에 이르기까지 일정규모 이상의 봉사기관들을 구청자원봉사센타로부터 소개받아

일일이 찾아 다니며 아이들의 봉사꺼리를 찾아냈다.

후원을 필요로 하는 기관에는, 엄마들을 설득해 후원을 유도하고, 아이들을 보내기도 했다.

프로그램 자체를  우리가 만들어 장애우들과 함께하는 봉사를 하기도 하고...

 

일을 시작하면서 내가 세운 목표는...

장애인 봉사, 봉사다운 봉사,

일정한 기관에 지속적으로 봉사하는것,

거기다, 봉사를 열심히 한 애들에게 외부상.을 하나씩 챙겨주어 입시에 도움이 되게 하고 싶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소망도 있었는데,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클래식 공연을 장애인들도 향유할 수 있게 해 주고싶었다...

 

 

그렇게 하루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즈음, 내게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난, 그때까지 붙박이로 집에서 살림만 해온 탓에 아는 사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소식은 따박따박 전해오는거다.

우리 봉사단은 엄마와 아들이 함께하는 봉사단인지라 엄마들의 라이드와 봉사후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인데,

엄마들중 한 사람이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거다.

내용인즉, 이렇게 엄마들이 고생해 봐야 봉사단장 아들만 좋은일 시키는 일. 이라는거다.

봉사단쪽으로 상이라도 생기면, 단장 아들 몫이지, 절대로 다른 애들에게 가지 않으니, 열심히 도울 필요 없다는...머 그런 말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다.

그런데, 누가 상을 주겠다는것도 아니고,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초치고 다니는 사람덕에,

순수한 의미로 봉사를 시작한 다른 엄마들의 사기를 땅에 떨어뜨려놓고,

결과적으로 단장의 팔과 다리를 잘라 일을 할 수 없게 만든 사람....그사람은

바로, 단장을 고사했던 그 엄마 였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때  봉사단 소개시간 딱 5분 받았었다. 나, 달달 떨며 그중 3분만에 원고 읽고 단상에서 내려왔는데,

그 딱 3분만에, 80여명이 마음을 정하여 신입단원이 되었다.ㅠㅠ

우리가 2학년이 되어  80명이 넘는 1학년까지 리드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때도

어김없이 1학년 봉사자 엄마들을 똑같은 말로 선동하여 봉사단의 일을 도울 엄마들을 모두 흩어지게 했었다.

내가, 봉사 말고도 학교를 대표하여 여기저기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일이 많아짐에도 나를 돕는이 단 몇명 만으로 120명이 넘는

단원을 꾸려나갔었다.

정말이지....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고, 명예가 있는 일도 아니고, 누가 인정해 주는 일도 아니구만,

당장에 그만두고 싶었다. ..외롭고, 힘들었다.

그러나..만일, 이 일이, 하나님께서 내게  하라 하신 일. 이라면, 내가 그만두면 안될것 같았기에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2학년 여름방학이 되었다.

서초구자원봉사센타 회의에서 그넘의 입방정이...일을 벌였다.

장애인들에게 클래식 공연을 보여주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을 말을 한 것이다.

가족봉사 형태로 하기로 한다.

오전엔 공연을 보여주고

점심식사는 공원에서 가족과 함께하고, 산책한다.

라이드는...한가족이 장애인 한명씩 케어한다.

는 아우트라인까지 말이다.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었다.

클래식공연...일반인들도 꺼려한다. 어려워서, 그리고  비싸서,.누가 그 비용을 기꺼이 대고 봉사를 하겠다고 나서겠는가?

공연장에서도 반가와하지 않을것같았따. 정숙할수 없는 관객이 신경쓰일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마침, 신생 <필하모니아 코리아 오케스트라>의 무료공연이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고, 그들은 오히려 관객이 있었음 좋겠다고까지 했다.

기관에서는 장애인들의 단체 외출에 상당히 소극적이었다.

관리도 어려울뿐 아니라 아마도  오고 가는 사이에 생길지 모르는 돌발사고 위험을 염려해서 였을것이다.

나는 울 애들이 후원하고 봉사하는 몇개의 기관을 접촉하고, 설득하여, 차량지원을 받고,

서초지구 봉사단원들의 자원봉사 신청을 받고,

그렇게하여...

2009년 7월 28일

송파구 임마누엘의집에 기거하시는 장애인분들을 모시고 서초구 윤봉길의사 기념관에서의 클래식공연 관람과

점심식사. 양재천 산책과 놀이... 프로그램을 마쳤다.

이 일은...

모 일간지에 상당한 분량의 기사로 실리기 까지 했다.

모....이것도 다~~ 그넘의 넘치는 인맥 덕이다.

센타에서 기자를 부른다 하기에, 나도 신문사 부장인 친구에게 전화를 해봤다.

그랬더니 아, 정말 기자가 짜잔~ 하고 나타나 사진찍고 인터뷰하더니...

척,기사화 된게 아닌가...헐^^

이 일로 난 내가 학교봉사단장을 맡으면서 소망했던 일을 다 이루었다.

봉사단장의 성실하고 적극적인 외교능력?덕에,

열심히 봉사스케줄에 따랐던 아이들은 졸업때 한개 이상의 외부 봉사상을 받을 수 있었으며,

장애인들에게 클래식공연을 만나게 해 주고 싶었던 나의 개인적인 소망도 이룬셈이다.

 

 

이 일을 통해서 나는 인생을 한꺼번에 몇계단을 배웠다.

리더는 항상 외롭다는것과. 주위에 적이 산재해 있다는것.적을 알고 있으면 지지 않는 <적>에 대한 내공도..ㅎ

마지막, 신문에 기사화 된 일로 인해,

구 자원봉사센타에서는 이 행사를 자신의 과업으로 가져가고자 했고,

처음에 왜 일을 사서 만드느냐고 핀잔을 주었던, 나와 함께 일했던 ㅅ서초지구회장은 이 일을 자신만의 과업으로 가져가고자 했다.

이 일은  모두의 협력으로 이뤄낸것 이지만,

봉사가, 다른 누군가에겐 생업이요, 치적,이 되어 입신양면의 도구가 되는걸 목격해야했다.

아, 물론, 기획부터 실행, 기사까지 모두 내가 한 일.이지만,

애석하게도 난.....자기 공을 내세우는 일에 관한한.....별로 경쟁력이 없다.

처음의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정말...세상이......흙탕물속이고,.. 지저분하다...

 

 

그시절 나를 도와 일을 함께 했던 엄마들과의 모임이 아직도 있고,

나를 보이콧했던 엄마들과의 모임도 아직 있다.

전자의 엄마들과 여행계를 하였고, 후자의 엄마중 한명, ㅅ엄마와 여행을 계획하면서...

그때 그 시절, 나를 젤로 힘들게 했던, 안티의 주인공, 그녀와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나선 나를 쥐어박아야 하는건지...

세월탓에 미움도 희석되어 보듬을 수  있게 된건지...

암튼.. 나이든다는건...색이 이것저것 섞여 본래의 색을 분별할 수 없게됨.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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