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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전

궁궐 랜선투어

by 별난 이 2021. 5. 3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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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은 조선의 법궁이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지 3년후 경복궁을 짓기 시작했다.

1395년 완공되었으니  명나라의 자금성이 착공된 1406년 보다 월씬 먼저 지어진거다

광화문

 

근정전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3개의 문을 지나야한다

광화문, 흥예문,근정문.

광화문은 석재의 기단위에 세워진 것이 다른 문들과 다르다

광화문에서 직선으로 남대문까지 육조거리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거리가 도로에 의해 잘려있다

 

광화문

 

입장권을 사기 위해 매표소 앞에서 긴 줄을 설 필요가 없다.

기냥 교통카드를 스윽 대니, 통과다. 해설관람은 중단중이다.

코로나로 좋은점도 있고, 나쁜점도 있다.

 

두번째 홍례문

요 입구에서 교통카드 스윽 대고 들어가면 된다.

 

광화문과 홍례문 사이 공간은 궁궐 수비대가 머무는 곳이다.

군사훈련을 하던 곳이다.

흥예문

정종은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경복궁이 싫었다.

해서 수도를 개경으로 옮긴다.

......경복궁은 중종4년간 비어있었다.

 

형 정종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태종은 다시 한양으로 환도한다

그러나  주로 머무는 곳은 그가 새로지은 창덕궁이었다.

정사나 대외적인 일만 경복궁에서 치렀다.

그 역시 많은 피를 쏟은 경복궁이 싫었던거 같다

 

태종은 아들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경복궁을 확장한다.

세종은 경복궁을 좋아해서 이곳을 더 크게 확장하고,

국가의 단초를 세우고,

비로소 법궁으로써 자리를 잡는다

 

근정문.

가운데문은 임금의, 동쪽문은 문관의, 서쪽문은 무관의 문이다

 

임진왜란때 경복궁이 완전히 불타 없어졌다.

선조는 전쟁이 끝나고 되돌아와서 덕수궁에서 지내면서

창덕궁의 수리를 명령하지만, 경복궁은 아니었다.

선조는 창덕궁의 수리가 다 되기 전에 덕수궁에서 승하했다.

 

그 후 270년간 경복궁은 불탄채로 폐허로 남아있다가

고종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복구되고 확장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태조때는 390여칸의 규모였던것을

고종때 7700여칸의 규모로 지었다.

20배나 확장한 것.

 

 

근정전은 경복궁의 정전이다

왕의 즉위식이나 문무백관의 조회, 과거시험, 외국사절의 접견등

국가 공식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경복궁의 북쪽과 남쪽의 지대 높이차가 약 1미터 된다고한다.

자연 배수가 되는 시스템이다

근정전 앞마당의 박석은 또다른 배수 시스템이다

미끄러짐을 방지하고, 햇빛 반사를 막고, 자연배수를 위한 한 수 였다

근정전

 

천장에는 발톱이 7개인 용이 새겨져있다

황제의 나라에서만 가능한 갯수이다

 

근정전에서 바라본 근정문

 

2단의 월대

 

임진왜란때 궁들이 불탄건 왜군들의 소행이 아니라

우리나라 노비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전쟁이 나고 선조가 피난을 떠나 궁이 빈 때를 노려

자신들의 노비증서들을 태워 없애고 궁궐의 보물들을 약탈했다고 한다.ㅠㅠ

 

 

동십자각

원래는 이곳까지 경복궁 영역이었다.

일제가 중간에 길을 내는 바람에 도로 한복판에 뚝 떨어져  나가 홀로 있다

나는 이 부분까지 완벽하게 복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동십자각을 볼때마다 일제강점기가 생각나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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